CAT STORY는 캣챠 크루원들과 고양이 사이의 특별한 사연을 소개해드리는 공간이에요. 이번 CAT STORY도 지난 레터에 이어 에디터 쑤와 반려묘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전 편에 이어서)
그저 동네 꼬마들 틈에 섞여 나무를 구경하는 관찰자 입장이던 저는, 그날 이후로 약간의 책임감이 생겼어요. 인터넷에 ‘길고양이 수명’을 검색해보고 유명한 고양이 카페도 가입했죠. 내가 돌볼 수 없는 영역의 나무가 궁금해졌어요.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 시간엔 뭘 하는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주워먹고 다니는 건 아닐지, 날씨가 추워지면 어떻게 살아갈지 등등이요.
어쩌다 만난 이 고양이와의 인연을 주변에 이야기하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네가 캣맘이 되었구나~”
‘캣맘’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 때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본 것 같아요. 남을 지칭할 땐 몰랐는데, 내가 불려보니 어감이 좀 묘했거든요. ‘이게 모성애인가?’ ‘어떤 존재를 이렇게 귀여워하고 자꾸 보고싶어하고 챙겨주려고 하면 ‘엄마’인건가?’하는 생각이 든거죠.
여기는 캣챠니까, 이 글 속에선 캣챠가 제안하는 대로 ‘레인저’라는 단어를 사용할게요!
저는 나무를 보러가는 일이 더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동네 레인저들과 소통도 하게 됐어요. 전화번호도 교환하고요. 레인저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는 존재였어요. 급식소를 관리하고, 추운 날 몸을 숨길 박스를 놓아주고, 아픈 아이들은 병원에 데려가거나 약을 챙겨주기도 했죠. 무엇보다도, 우연히 눈에 띄면 챙겨주는 게 아니라 나름의 루틴을 정해 만난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밥을 주다니. 고양이가 그 약속을 기억하고 매번 찾아오다니. 이게 진정 도시의 낭만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나무를 입양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레인저 동료(?)님들 덕분입니다. 왜 이 시점에, 저 친구의 삶에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지. 내가 왜 고양이를 키워도 되는 사람인지. 더 좋은 집사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지. 모두 다른 레인저에게 배웠어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동네 핵인싸 나무는 고양이 사회에선 인기가 없는 것 같았어요. 서열 싸움에서도 매번 졌고요. 야생의 생존법을 알려줄 어미는 아깽이 시절에도 안 보였다고 해요. 아직 한 살이 안 된 어린 고양이인데, 이대로 겨울을 무사히 나기는 힘들 것 같았어요.
그게 길고양이의 운명일 수 있죠. 다른 많은 고양이들이 그렇게 짧은 생을 살다 갈 거예요. 인간에 의해 문명화된 이 도시도 고양이들에겐 야생이라는 점도 알아요. 그 야생에서 약자로 규정된 존재를 인간이 모두 구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떡하나요.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네가 나에게로 와 ‘왜옹’을 했는 걸요…. 저는 결국 나무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나무의 포획과 중성화 수술, 예방접종 과정도 레인저들과 함께 했어요. 그 중 한 분은 집사 장비가 하나도 없는 저를 위해 안 쓰는 이동 가방을 내어주고 포획도 직접 해주셨죠. 병원에도 찾아와 주셨어요. 나무가 퇴원하고 우리집으로 오던 날, 저는 레인저들이 모은 마음을 한 가득 받았습니다. 한동안 사용할 화잘실 모래, 사료, 간식캔 등을 잔뜩 챙겨주셨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이엔 나무의 병원비를 담은 봉투가 숨겨져 있었어요. 이제 제 고양이니 제가 처리하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는데, 함께 돌보던 고양이니 나눠 내자면서 기어이 보내주신 거예요.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책임감을 증명하기 위해 입양비를 내고 데려오기도 하잖아요. 저는 나무를 데려오며 너무 많이 받기만 했어요. 사실 제가 아니라, 나무가 받은 것들이겠죠.
오며가며 나무를 눈에, 마음에 담았지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저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꼬마는 엘리베이터에서 어머니를 만나 “여기 12층에 나무가 산다면서요?”라고 물었대요. 나무를 아끼던 초등학생들이 공원에서 사라진 나무의 행방을 소문으로 전해듣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6년째 한 생명을 돌보고 있다는 게 여전히 새삼스러워요. 힘에 부칠 때도 많고요. 그래도 꿋꿋이 버텨내고 있는 건 저 혼자만의 힘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무의 행복을 바라는 모두의 마음이 나와 나무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랑은 이렇게 또 다른 사랑이 자라날 씨앗이 돼요. 너무 대단하죠?
레인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요. "그게 다 자기만족을 위한 거 아니냐", "약한 존재를 챙겨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거다"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고양이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죠. 저는 알아요. 누구보다 나무를 더 오래 옆에 두고 싶었을 이들이, 물심양면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나무를 저에게 보내주었으니까요. 레인저가 원하는 대가는 길고양이의 온전한 삶, 그뿐이에요. 설사 스스로의 만족감을 대가로 가져가더라도 그게 대체 무슨 잘못인가요. 그로 인해 어떤 생명은 ‘내일’을 얻는 걸요.
지금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고양이의 내일을 만들어주고 있을 모든 레인저들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