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단체 '케어' 영상 캡처

지난달 중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아기 길고양이가 추락사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관련 기사 링크↗︎ : 다소 자극적인 사진과 묘사가 들어있어요) 

목격자에 따르면 아기 고양이가 4층 높이 천장에 갇혀서 며칠 동안 울었는데, 병원 보안요원에게 구조해달라고 요청하자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냐"며 방치했다고 해요. 일부 동물단체와 레인저님들은 병원 측에 책임자 처벌과 시설 보수를 요구하며 민원 넣기 운동을 벌였어요. 그러자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는 민원 넣는 분들을 비난했고요.

왜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나

이 사건을 보면서 우선은, 목격자나 병원 관계자 중에서 119나 지방자치단체 통합민원센터(120)에 신고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어요.

길고양이 구조, 유기견 포획 같은 동물 구조 요청을 119에 하면 안 된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정확하게는 ‘단순 동물 구조 요청은 119에서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인명 피해와 직결되는 긴급 출동에 대응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달리 말하면, 특별한 긴급 상황이 없으면 전문 구조 인력이 출동을 해서 동물 구조 업무를 수행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일반인의 힘으로 동물 구조가 어려운 경우에 119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여 구조를 요청해볼 수는 있는 것이죠. 119에서 검토하여 출동이 어려운 경우에 지자체의 관련 부서를 연결해주기도 하고요.

지자체에도 마땅한 동물 구조 담당자가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 지자체에 따라 직접 현장에 나가보기도 하고, 동물 구조･수습 업자를 불러주기도 하죠.(이런 업자를 못 믿어서 안 부르는 분들도 계시죠.) 

어쨌든 누군가 119나 지자체에 신고를 했다면 조금이라도 구조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최소한 4일 동안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같은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요. ‘나와 관계 없는 생명의 위험에 무심한 사회'인가 하는 울적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무심한 사회'는 누가 만드나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동물이 위험한 상황인 것으로 추측될 때 어디에 신고할지가 모호한 게 현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소방구조대에도, 지자체에도 동물 구조 인력이 편제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특히 그 동물이 나의 반려동물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길고양이처럼 누구의 가족도 아닌 동물, 또는 다른 사람의 반려동물이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대상을 사람으로 바꿔볼까요. 아동학대 문제에서 비슷한 얘기가 많이 나왔었죠. 옆집 아이가 학대 내지는 방치 당하는 것으로 추측될 때,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유독 무심하다는 얘기 말이에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아동학대 사건들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이웃이나 교사･의사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몰래 할 수 있도록 제도가 조금 더 정비되었어요. ‘아동학대가 의심스러우면 신고를 해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는 계기가 됐던 것 같고요.

제도가 생기면 사람들의 인식도 생길까요? 문제 인식이 먼저 생겨야 제도가 만들어질까요? 정답은 없겠죠. 어쨌든 아동학대 쪽은 조금씩 변화가 이뤄졌어요.

동물학대 쪽은 어떨까요? 이웃이 동물을 방치 또는 학대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면, 우리는 어디에 신고할 수 있을까요?

미국의 경우 방치를 포함한 동물학대를 철저히 금지하고 감시･처벌하는 ‘동물학대법'이 잘 마련되어있기 때문에, 학대 의심 정황이 있으면 지역 경찰이나 911에 신고↗︎할 수 있어요. 당국이 개입하거나 SPCA 같은 대규모 동물단체가 확인 작업에 들어가죠.

동물을 방치하여 학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는 어떨까요? 주마다 다르지만, 악의적으로 방치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중범죄로 처벌하기도 하며, 단순히 태만하여 방치한 경우에도 경범죄에는 해당한다네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도 동물보호법에서 ‘방치' 역시 동물학대라고 규정하고는 있어요. 

그러나 방치에 따른 학대 행위에 관한 처벌 규정은 현재 없습니다. 

올해 4월에야 동물보호법 개정이 이뤄져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하여 반려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는 조항이 추가되게 되었어요. 이 조항은 내년 4월 27일부터 시행됩니다.

하지만 동물이 사망한 후에 처벌하는 사후약방문인 데다가,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미국･영국 등에서는 동물 학대 범죄가 최대 10년 이상의 실형이나 수억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는 중죄로 취급되죠.

처벌 수위는 단순히 범죄자가 얼마나 큰 형벌을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옆집이 반려동물을 학대하는 것으로 의심될 때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가?

동물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나 전문가가 실제 출동하여 확인하고 개입하는가?

소방서나 지자체에 동물 구조 전문인력이 배치되어 있는가?

공공 병원의 4층 높이 구조물에 길고양이가 갇혔을 때 신고하여 구조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동물학대가 중죄로 취급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달라지는 것이죠.

©데일리벳

수의사들도 동물학대 의심 신고 꺼리는 이유

서울대 수의대 연구팀이 연구해보니, 우리나라는 수의사들조차도 동물학대 의심 신고를 주저한다↗︎고 해요.

수의사 593명을 설문조사해보니, 동물학대 의심 사례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87%에 달했는데, 목격 시 관계당국에 신고를 하겠다는 비율은 49%에 그쳤어요.

수의사들이 보기에 현행 법률과 시스템이 학대 동물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충분하지 않으며, 관련 제도에 대한 신뢰도도 낮아서 신고를 꺼리는 것으로 연구됐어요. 수의사가 동물학대 의심 신고를 하지 않아도 현행법상 처벌받지 않으므로 강제력도 없고요.

동물학대 의심 정황을 발견하면 사실상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수의사들조차 신고를 꺼릴 정도로 현행 시스템에 구멍이 많은 거죠.

크루원 크루원님, 다시 초반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볼게요.

분당서울대병원 4층 높이 구조물에 갇힌 아기 고양이를 결국 추락사하게 만든 건 누구일까요?

왜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신고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 있었다면 어디에 신고해야 했을까요. 그 신고는 받아들여졌을까요? 누가 출동했어야 하며, 끝내 출동하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아기 고양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만들려면,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찾아가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