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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는 누나를 바라보는 나무. 그래 네가 뭘 알겠니.

20분 간의 경계경보 체험판은, 다시 돌이켜봐도 웃어넘길 수 없이 아찔하기만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재해·재난 뉴스를 접하는 요즘이다. 지구 어딘가에선 예고 없이 산불이 번지고 화산이 폭발하고 전쟁도 진행 중이다. 기후 위기 시대, 심지어 분단 국가에 살면서 무슨 배짱으로 재난 대응을 고민하지 않았던 걸까.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모든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마음에 경보가 울린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이런 문자가 온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국립재난안전포털에서는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만든 자료다. 가이드라인은 이렇게 시작한다.

반려동물과의 재난 대피, 미리미리 준비 해두세요.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동물과 함께 대피해야 하기 때문에, 대피가 늦어지거나 대피 시설을 찾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보호자와 반려동물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내말이 그말이에요. 책임질 반려동물이 있는 인간은 재난 상황의 시작부터 약점을 안고 가는 셈이다. 그만큼 두 배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서 기억해둘만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재난 발생 전

•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가까운 대피시설 목록을 만들고 이동 경로 및 방법을 생각해둔다.
• 도움 받을 수 있는 공공기관과 동물보호단체 및 동물병원 비상연락처 목록을 만들어둔다.
•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물품을 모아둔 재난 키트를 구비해 놓는다.
• 반려동물을 잃어버리는 일에 대비하여 동물 등록을 마친다.
• 가족들과 함께 대피 과정을 미리 연습해본다. (고양이의 경우 사실상 불가능..)

재난 발생시

• 절대 반려동물을 혼자 두거나 이동장 밖으로 꺼내지 않고, 기둥에 묶어두지 않는다.
• 야생동물과 접촉을 피하고 오염된 물이나 바닥에 떨어진 잔해 등을 먹지 않도록 주의해서 살펴본다.
• 재난 시 스트레스로 인해 반려동물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려동물을 더 주의 깊게 살핀다.

한번쯤 머릿속에 넣어두면 좋은 내용이긴 하지만, 원론적이다. '반려동물'을 '반려견'으로 상정하고 작성한 느낌도 든다. 각자 사정에 맞는 '재난 키트' 가방을 만들어두라는 정도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 대피시설 목록도 비상연락처 목록도 직접 만들라고 한다. 반려동물 보호자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떠넘긴다. 시스템적으로 어떤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왜냐면, 실제로 구체적인 내용이 법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재난시 대피소에 반려동물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동물이 누군가에겐 위협이 될 수 있고, 역으로 타인이 나의 동물을 향한 위협일 수도 있다. 알레르기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 안 되는 건 또 아니다. 지난 봄 강릉 산불 때는 이재민 대피소의 구역을 나눠 반려동물의 입소를 허가했다.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결국 그때그때, 각 대피소의 재량에 따라야 한다는 말인데 이를 어떻게 미리 알고 목록을 만들라는 말인가.

2022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가 현행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2024년 예정)’으로 강화한다며 발표한 내용에는 '재난 시 반려동물 대피 체계'에 대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은 유기동물을 위한 민간동물보호시설 얘기다. “또 화재·지진 등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 대피를 위해 농식품부 지침에 따라 지자체별 대피요령을 마련하도록 하고 대피시설 확보 등 사전 대응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라는 구체성 없는 문장만 덧붙여진 정도다.

해외는 어떨까. 미국은 2006년부터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재난 대응계획에 동물을 포함하도록 하는 ‘반려동물 대피와 운송 기준법’이 통과되면서다. 영국은 반려동물뿐 아니라 동물원의 동물, 농장동물 등 축종별 대피 요령도 마련하고 있다. 호주는 주마다 반려동물을 위한 대피 매뉴얼이 정해져있고,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도 많은 편이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로 ‘반려동물 재난 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동행 피난을 원칙으로 한다.

보호자와 충분히 교감하며 상호간의 약속 언어가 명확한 반려동물과, 말을 하지도 뛰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 중 어떤 존재가 더 예측 가능할까. 훈련이 잘 된 반려동물과,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성인은 또 어떤가. '인간동물'이라고 해서 언제나 '비인간동물'보다 통제가 쉽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할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비인간동물이다.

반려동물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결국, 그 존재를 세금으로 증명하지 않아서인가. 그래서 여차하면 버릴 수 있는 물건 취급을 받는건가. 이렇게 생각하면 한없이 씁쓸해진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논의되는 반려동물 보유세가 도입되면, 사회의 시선과 제도의 적극성이 좀 달라질까? 최근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반려동물세 도입 찬성 답변은 여전히 과반을 넘지 못했다. 행정부처들의 동물권 감수성이 제자리 걸음인 상황에서, 보유세 납부를 통해 보장받는 권리가 눈 앞에 그려지지 않기 때문일 거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거대 재난 상황에서 나와 내 반려동물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국가는 어디쯤 와 있을까.